저항적 목가시인 신석정을 기념하는
석정문학관
연혁
2011.10.29.
석정문학관 개관
2011.10.29.~2013.12.31.
허소라 관장 역임
2014.4.1.~2016.12.31.
소재호 관장 역임
2017.3.1.~2020.12.31.
정군수 관장 역임
2021.1.1.~2021.11.9.
부안군 직영
2021.11.10~현재
(재)부안군문화재단 위탁운영
석정문학관 현황
- 소재지 :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선은 1길 10. 석정문학관
- 개관일자 : 2011. 11. 29.
- 부지면적 : 16,870㎡
- 건축연면적 : 1,573㎡
- 층수 : 지상 2층
- 주차시설 : 20대
관람 안내 및 문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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관람 시간 : 하절기 (3월~10월) 09:00 ~ 18:00 / 동절기(11월 ~ 2월) 09:00 ~ 17:00
※ 휴게 시간 : 12:00 ~ 13:00 - 매주 월요일 정기 휴관(월요일이 연휴인 경우 연휴 다음날이 휴관일입니다.)
- 문의 : 063-584-0560
전시실 및 부대시설
1F 상설전시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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석정 시인의 친필 원고 및 대표 시집, 유고 시집
- 대표 시집 「촛불」, 「슬픈 목가」, 「빙하」, 「산의 서곡」, 「대바람 소리」
- 유고 시집 「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」
- 유고 수필집 「난초 잎에 어둠이 내리면」 등 - 스승, 선배, 동료, 문인, 제자 등 지인 관계 전시
- 석정의 방 : 생전 집필 공간, 유품 전시
- 그 외 : 작품 감상 키오스크, 미디어 아트, 대표 시 감상 제공
- 면적:300㎡
1F 세미나실
- 용도 : 석정시인 소개 영상 상영, 그 외 문학 행사, 교육 및 회의 등으로 대관 가능
- 장비 및 시설 : 빔 프로젝터, 의자, 책상, 사회자 단상, 음향 시설 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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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용료 – 시간에 따른 차등 적용
- 오전(09:00~12:00) : 10,000원
- 오후(12:00~18:00) : 20,000원
- 야간(18:00~22:00) : 20,000원 - 면적:114㎡
관람안내
석정문학관 소개 영상
- 신석정 선생은 전라북도 부안의 산자수명한 자연이 낳은 시인이다.
-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분단 시대의 해방 공간과
- 군사독재의 어두운 현실 속에서 자연과 역사를 온몸으로 감당하면서
- 때로는 목가적인 촛불을 켜고 때로는 시대를 밝히는 촛불을 켜면서
- 지조를 굽히지 않고 일생을 교육자와 시인으로 살아왔다
- 지재고산유수
- 자신의 뜻이 산의 의연함과 거침없는 물의 흐름과 같이
- 높은 지조를 변함없이 지니고 살겠다.
- 이는 자신을 둘러싼 부안의 자연 속에 자신의 시심이 뜻하는 바가 있으니
- 이를 바탕으로 일생을 올곧게 살겠다라는 신석정 선생의 좌우명이다.
- 야트막한 언덕과 부드러운 바람
- 서해바다의 바람이 뺨을 스치는 부안에서 신석정은 태어났다
- 석정은 당시 시인이면서 한학자셨던 조부 신재하와
- 간제 전우의 제자였던 아버지 신규월의 영향으로
- 어려서부터 전화하면서도 엄격한 가풍 속에서 자랐다
- 모친 또한 법도가 분명하고 사리에 냉철한 분으로
- 작은 잘못에도 호되게 다스리며 자식의 의젓한 인격을 재촉하셨다
- 불의 앞에 굽히지 않는 정신은 석정이 보통학교에 입학해서 더욱 두드러진다
- 석정이 보통학교 육 학년 때 수업료를 미납한 벌로
- 한 학생을 발가벗겨 철조망 밖으로 몰아내고는
- 강아지처럼 기어서 다시 철조망 안으로 들어오라고 명령하는
- 야만적인 일본인 선생에 반발하여
- 석정은 6학년을 선동하여 동맹 휴학을 일으켰다
- 400 여 명의 학생들은 등교를 거부하고
- 이 주 동안이나 학교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산에 진을 치고 학교에 맞섰다
- 이 일로 석정은 무기정학을 받고 선생도 산중학교로 전출되었다.
- 석정은 항상 서재에서 시를 읊으시던 조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.
- 할아버지가 읊조리시던 한시를 들으면서 석정의 시심은 깊어갔다
- 자신의 문학적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서림공원의 숲길을
- 부안의 여류시인 매창이 거닐었던 그 숲길을
- 그녀의 이화우 흩날릴 때 울며 잡고 이별한 임을 읊으며 석정 또한 거닐었다
- 소년석정은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시심이 차오르면
- 잔디밭이나 바위가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
- 바다를 걸어오는 황혼을 맞이하며
- 저녁 노을 붉게 타는 수평선에 자신을 실어 보내며
- 아득한 시를 마음속으로 한가득 짓곤 했었다.
- 무기정학으로 보통 학교를 쉬고 있던 1924년 이른 봄.
-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어느 날 남궁현이란 손의 친척이 찾아온다
- 그와 함께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
- 기암교석이 즐비한 해안가 십 리 길을 걸었다
- 집으로 돌아오던 석정은 수평선 너머로 뉘엿거리는 해를 바라보며
- 드디어 참고 참았던 시심이 터지게 된다.
- 집에 오자마자 기우는 해를 지어
- 남궁현에게 보이고는 찬사를 듣게 된 신석정은
- 조선일보에 투구하기에 이르고 소적이라는 필명으로 게재되면서
- 드디어 신석정은 시인으로 세상에 나서게 되었다.
- 석정은 스무 살 때인 1926년 두 살 아래인 박소정을 신부로 맞이하였다.
- 시 세계에 빠져 있으면서도 소작을 얻어 직접 농사를 지었던 석정은
- 서울로 올라가 석전 박한영 대종사의 문하로 들어가 1년여의 사사를 받는다.
- 이때 시문학 3호에 선물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
- 만의 한용은 춘원 이광수 박용철 정지용 편석촌 김기림 등을 만나며 문학적인 성장을 이룬다
- 가난한 집안을 돕기 위해 낙향한 석점은
- 다시 문단에 복귀하라는 안서 김억과 편석촌 김기림의 권고에도 불구하고,
- 자신만의 시세계를 일굴 수 있는 고향에 정착하게 된다.
- 고향 마을에 손수 살 집을 짓고 청구원이라 이름 붙인 신석정은
- 이곳에서 첫 시집인 촛불과 제 2 시집인 슬픈 목가를 집필한다.
- 촛불은 39년도에 간행이 됐는데 그다음에 이제 슬픈 목가는 47년도에 됐죠
- 그렇다고 해서 30년대 말기 무렵의 작품만으로 이루어진게 아니고
- 31년도부터 지상에 발표를 했던 작품들인데
- 그때 일본이 시집이나 소설집을 내려면 검열을 하게 됐는데
- 검열이 통과가 안 되는 거예요.
- 그러다가 천신만고끝에 39년도에 촛불이 간행되고
- 슬픈 목가는 해방 직후 47년도에 작품을 모아서 보완해서 간행이 되는데
- 이 작품집도 해방 직후에 됐지만 그 안에 있는 작품들은
- 전부 일제 말에 발표되었던 작품들입니다.
- 석종이 두 권의 시집을 집필한 1940년대는
- 민족말살 정책이 극에 달한 시기로 문화의 암흑기였다.
- 문장지에 실릴 예정이었던 차라리 푸른 대는
- 몇 차례의 검열 끝에 결국 실리지 못했고
- 창씨개명을 거부하며 해방 때까지 아예 붓을 꺾었다
- 그때 창시개명을 안하려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는데
- 이리저리 도망 다니시다가 8일을 맞이하셨고
- 또 문장지를 폐간하고 국민문학에 일본말로 친일시지 그러니까
- 원고청탁에는 찢어 던지고 고향으로 낙행했습니다.
- 30년대 시인 중에 제가 조사한 중에는
- 유일하게 석정만이 창씨개명을 안 했고 친일시를 안남겼어요.
- 김제 부안 전주를 거쳐가며 교직의 몸을 담은 신석정은
- 늘 고향 산천을 닮은 자연을 가꾸고 마음에 품으며
- 시를 짓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.
- 회갑 즈음에 내놓은 산의 서곡은 신석정의 네 번째 시집으로
- 백여 종이 넘는 나무 앞꽃 풀의 이름을 시어로 삼아
- 부안을 비롯한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.
- 하지만 석정이 단순히 자연에만 파묻혀 시를 쓴 것은 아니다.
- 시와 함께 시대의 부조리와 암담한 현실에 타협하지 않았으니
- 지질 고산유수는 단순한 자연예찬이 아니라
- 고산과 유수같이 지조를 다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
- 시대의 광분에 이끌려 인간으로서 본의를 저버리는 과오를 범하지 않은 신석정은
- 다시금 자연으로 회개하며 대바람 소리를 발표한다.
- 석정의 중후기 시를 보지 보지 못한 분들은
- 석정을 단순히 목가 시인으로만 알고있는데
- 사실은 석정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목가 시인이라는 말도 별로 반기지 않았고
- 또 저항 시인이란 말도 반기지 않았어요.
- 시인이라면 모름지기 자연서정도 담고
- 또 시대마다 역사에 뛰어들어서 역사현장을 밝히는 시도 썼고
- 또 그런 두 세계를 다 석정이 다 지니고 있다, 이렇게 생각하면 좋겠어요.
- 신석정 그는 고향산천을 통해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시를 읊다가
- 마침내 스스로 지어낸 영혼의 시세계 속을
-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
- 높은 산과 흐르는 물에 담궈놓은 숭고한 그의 뜻이 담긴 시들은
- 여전히 우리 가슴에 남아 있다.